[한국영화 100주년 9] 이필우에서 홍경표까지… 촬영감독 10

사실이 시나리오 작가도 함께 뽑고 싶었다. 촬영과 시나리오 2분야에서 5명씩 선정할지 고민했다. 고심 끝이다만, 촬영 감독들이 되기로 최종 선택했다. 결심하고 선택하라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이 나라의 시나리오 작가 층이 너무도 얕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맨!감독의 “늦가을”(1966)을 쓴 김·지홍 선생님 등 작가들에는 면목 없습니다. 고백하면 이 땅에 좋은 촬영 감독이 이렇게 많을 줄은 예상 못 했다. 감독 배우 제작자 등 어느 인선보다 힘들었다. 꼭 포함해서 다루고 싶었는데 마침내 그렇게 되지 못한 분들에 대한 미련을 지금 이 순간도 떨치기 어렵다. OB중에는<귀로(1967),<휴일>(1968),< 푸른 하늘에 사는>(1968)등 거장 이·맨 중 감독과 11편을 함께 했다는 나·솟키이 YB중에는 박·챠눅의<올드 보이>(2004)에서 “친절한 금자 씨”(2005),”사이보그지만 괜찮아”(2006),”박쥐”(2009),”스토커”(2013),<아가씨>(2016)등 박·챠눅의 분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중견 전·종훈이 대표적이다. 천상 다른 기회를 노려야 한다. 참고, 인용은 주로 한국 영상 자료원의 한국 영화 데이터베이스에서 했다.

사실 시나리오 작가도 같이 고르고 싶었다. 촬영과 시나리오 두 분야에서 5명씩 선정할지 고민했다. 고심 끝에 촬영감독들이 되기로 최종 선택했다. 결심하고 고른다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이 나라 시나리오 작가층이 너무 얕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만희 감독의 늦가을(1966)을 쓴 김지헌 선생 등 작가분들에게는 면목이 없다. 고백하자면 이 땅에 좋은 촬영감독이 이렇게 많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감독 배우 제작자 등 어느 인선보다 힘들었다. 꼭 포함해서 다루고 싶었지만 끝내 그러지 못한 분들에 대한 미련을 지금 이 순간도 떨쳐버리긴 어렵다. OB 중에는 <귀로>(1967), <휴일>(1968), <푸른 하늘에 살다>(1968) 등 거장 이만희 감독과 11편을 함께 했다는 이석기가, YB 중에는 박찬욱의 <올드보이>(2004)부터 ‘친절한 금자씨'(2005),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박쥐'(2009), ‘스토커'(2013), <아가씨>(2016) 등 박찬욱의 분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중견 정종훈이 대표적이다. 천상 다른 기회를 노려야 한다. 참고로 인용은 주로 한국영상자료원의 한국영화 데이터베이스에서 했다.

1. 이 필우(이·필 병 1897~1978):한국 최초의 촬영 기사. 이·기세 감독의 연속 드라마<지기>,<신파극 장한몽>(1920)을 비롯한 첫 순수한 한국 영화<장화 홍련전>(김·용화은, 1924)감독 이·그용들과 함께 고려 영화 제작소를 만들어 선 보인 첫 영화<쌍 옥루(1925), 희극 영화의 효시” 모그리고”(1926), 검열에서 누더기가 됐다”낙원을 찾아 무리”(팬·은, 1927), 명월관 기생 강·면 하미의 사랑과 죽음을 그린 연출작<홍련 토비 련비 연산>(1927),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1930년대 한국 영화 문법과 일제 시대의 신여성 등에 관한 담론을 확인할 수 있다”미몽(죽음의 자장가)”(양·주례 남, 1936)등이 그의 촬영 작품. 촬영(18개)외에도 감독(4)각본(3)각색(1)제작(3), 기획(5)조명(1)편집 14), 음향(3)형상(13)등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자랑하며 한국 영화사의 팔방 미인형 개척자로서 손색이 없다. 한국 최초의 발성 영화”춘향전”(이·묘은우, 1935)기획·녹음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1964년 한국 영화인 협회 부산 지회 창설하고 초대 회장을 지냈다.

3. 정 카즈나리(정·일성, 1929~):말 그대로 영상 미학의 대가. “촬영 기사”이 일반적이었던 당시<만다라>(임·곤테쿠, 1981)을 기하고 국내에서 처음”촬영 감독”이라는 자막이 쓰이게 한 주역. “광복 전후의 촬영 기사 시대를 대변하는 상징적 인물”(김·정원)인 선배 김·학성[<집 없는 천사>(최·성인규, 1941),<생명>(이·암 전, 1958),<오 바루탄>(유·효은목, 1961)]을 항상 존경하고 기술을 넘어 예술로 촬영을 추구했던 영화 사색 가요 철학자이다. 올해 부산 영화제가 한국 영화 회고전 사상 처음으로 감독과 배우가 아니고 AAA로 회고전의 영예를 바쳤다는 사실이 그 증거.<만다라>를 포함한<화 여자>(김·기 영, 1971),<사람의 아들>(유·효은목, 1980),<마지막 증인>(이·도우용, 1980),<늦가을(김·수연, 1981),<팬·지니>(배·장호 1986),<본 투 킬>(장·현수, 1996)까지 엄선된 7편을 선 보였다. 『 킬소토우무 』(1985)『 서편제 』(1993)『 춘향전 』(2000), 『 취화선 』(2002)『 천년학 』(2006)등 임·곤테쿠 영화는 그와 협력의 산물이다. 그가 말하기를 “삶의 철학이나 사상이 작품 속에 투영되는 것만이 예술로서 살아남지 않겠나.”

4. 정·죠묘은(1933~)한국적 영상 미학의 탐구자, 군 복무 중에 인연을 맺은 김·수연 감독의 1959년 작”세 신부”로 촬영에 입문했다. 그 뒤 윤·인호 감독의 “아홉살의 인생”(2004)까지 140편에서 촬영을 담당했다. 그 중 김·수연과 콤비를 이뤘던 편수이 “도시에 간 처녀”(1981)까지 총 41편. 그 안에는 김·수연의 초기 히트작<청춘 교실>(1963)으로 저평가된 걸작<혈통>(1963)외에 “문예 영화의 흥행 가능성을 입증한 최초의 사례”인 김·수연의<갯벌(1966)도 있다.그 수작으로 대종상, 부일 영화 상, 백마 영화 상,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등 많은 영화 상 촬영 상을 휩쓸어 1960년대를 대표하는 촬영 감독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정·죠묘은이 “한국적 영상 미학의 탐구자”라고 평가되는 것도 김·수연과의 협업의 결과인 셈이다.그는 약 40년간 활동하며 정·일성, 서울·정민이랑 함께 한국 촬영계의 최고 세명의 무리 중 한명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다른 두 거장에 비해서 튀는 숨막히는 대표작이 많지는 않다. 1995년 대종상, 융핑상 촬영상을 수상했다”영원한 제국”(박·정원, 1994)과 1997년 청룡 영화 상”창( 노는 여자 집 창문)”(임·곤테쿠)정도?

4. 정조명(1933~) 한국적 영상미학 탐구자, 군 복무 중 인연을 맺은 김수연 감독의 1959년작 ‘세 신부’로 촬영 데뷔를 했다. 이후 윤인호 감독의 아홉 살 인생(2004)에 이르기까지 140편으로 촬영을 맡았다. 그 중 김수연과 콤비를 이룬 편수가 ‘도시로 간 처녀'(1981)까지 총 41편. 그중에는 김수연의 초기 히트작 <청춘교실>(1963)과 저평가된 걸작 <혈맥>(1963) 외에 ‘문예영화 흥행 가능성을 입증한 최초 사례’인 김수연의 <갯벌>(1966)도 있다.그 수작으로 대종상, 부일영화상, 백마영화상, 아태영화제 등 많은 영화상 촬영상을 휩쓸며 1960년대를 대표하는 촬영감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정조명이 ‘한국적 영상 미학 탐구자’로 평가받는 것도 김수영과의 협업의 결과인 셈이다.그는 약 40년간 활동하며 정일성 서정민과 함께 한국 촬영계 최고 3인방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는 있지만 다른 두 거장에 비해 눈에 띄는 숨막히는 대표작이 많지는 않다. 1995년 대종상, 영평상 촬영상을 받은 영원한 제국(박종원1994)과 1997년 청룡영화상 창문(임권택) 정도?6. 장 석준(장·속쥬은, 1935~1980):한국 영화 기술의 개척자 1959년 김수연 감독의 “구혼 결사대”로 데뷔한 뒤 유명 감독들과 작업하는 총 80편 남짓의 필모그래피 가운데 한국 영화사에 남은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김·수연”안개”(1967)을 비롯한 이·송의 “장군의 수염”(1968)이·쟈은호의 “별빛들의 고향”(1974)김·수연”토지”(1974)김·허 송의 “영자의 전성 시대”(1975)와 “겨울 여자”(1977)하·길 존의 유작<양길승과 영자>(1979)등이다. 숨이 차는 것도 당연하다.김·수연 감독과 10편 별로 작업하고”십년 세도”(1964),”몽녀”(1968)등 10여편에서 임·그오은텍 모두 협연했다. 『 몽녀 』은 하나의 촬영기와 영사기에서 구현된 입체 영화였다. 팬 범위라는 세계 최초의 방식에 의한다. 그것은 1970년대 한국 영화계에서 유행한 테크 니스 코프 촬영으로 활용됐다. 문희, 신·선일 주연의 이·송 감독의 1971년 작”춘향전”은 한국 최초의 70mm영화에서 그 촬영 때문에 카메라 보디를 치고 여러가지 부품을 조립하고 만들었다고. 장·속쥬은이 한국 영화 기술의 개척자로 평가 받는 이유다. 알고 있으려나?동갑의 유·영길이가 그의 조수였다는 사실을… 그렇긴…..6. 장 석준(장·속쥬은, 1935~1980):한국 영화 기술의 개척자 1959년 김수연 감독의 “구혼 결사대”로 데뷔한 뒤 유명 감독들과 작업하는 총 80편 남짓의 필모그래피 가운데 한국 영화사에 남은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김·수연”안개”(1967)을 비롯한 이·송의 “장군의 수염”(1968)이·쟈은호의 “별빛들의 고향”(1974)김·수연”토지”(1974)김·허 송의 “영자의 전성 시대”(1975)와 “겨울 여자”(1977)하·길 존의 유작<양길승과 영자>(1979)등이다. 숨이 차는 것도 당연하다.김·수연 감독과 10편 별로 작업하고”십년 세도”(1964),”몽녀”(1968)등 10여편에서 임·그오은텍 모두 협연했다. 『 몽녀 』은 하나의 촬영기와 영사기에서 구현된 입체 영화였다. 팬 범위라는 세계 최초의 방식에 의한다. 그것은 1970년대 한국 영화계에서 유행한 테크 니스 코프 촬영으로 활용됐다. 문희, 신·선일 주연의 이·송 감독의 1971년 작”춘향전”은 한국 최초의 70mm영화에서 그 촬영 때문에 카메라 보디를 치고 여러가지 부품을 조립하고 만들었다고. 장·속쥬은이 한국 영화 기술의 개척자로 평가 받는 이유다. 알고 있으려나?동갑의 유·영길이가 그의 조수였다는 사실을… 그렇긴…..7. 유 에이키치(유·영길, 1935~1998): 위대한 촬영 감독을 넘어” 아름다운 인간”였다!유·효은목 감독의 “나도 인간이 된다”(1969)로 데뷔, 최·하우오은의 “욕 하는 노인”(1969), 유·효은목의 “분 예기”(1971)등의 문예물을 작업하고 있다. 하·길 존(<화분, 1972>등)이·쟈은호(<그래 오늘은 안녕 1976>), 김, 허 송(<3번은 짧은 3번은 긴 1981>등)등 동인 집단”영상 시대”의 감독들과 작업. 장·선우(<성공 시대, 1988>, 박·광수(<칠스와 이면 만즈, 1988, 1988년대>.그 뒤 박·광수(<그들도 우리처럼, 1990>,<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1995>), 이·묘은세(<내 사랑 나의 신부, 1990>,<첫사랑, 1993>), 장·선우(<움크베미의 사랑, 1990>,<너에게 나를 보내고 1994>등)등 1990년대”코리아 뉴 웨이브”감독들의 거의 모든 작품에 참가. 1990년대 중반 이후 이·챠은동(< 푸른 생선, 1997), 허· 진 허모(<8월의 크리스마스, 1998)>등 데뷔작을 함께 한다. 촬영 상 수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후배 양성에도 힘을 쏟아, 한국 영화 아카데미와 영상원 등에서 촬영 강의도 병행. 바로” 아름다운 인간” 같다.8. 박 승배(박·승베, 1939~):”80세의 작은 거인””키도 체형도 낮은 목소리도 낮다. 행동 거지나 성격도 정중하고 차분하지만, 카메라를 잡으면 작은 체구에서 힘든 열기에 가득찬 집념의 직업 정신을 나타낸다.”영화 평론가 김·두호가 2월”인터뷰 365″에서 일칼은 “80세의 작은 거인”. 정·진우 감독의<폭로>(1967)에서 데뷔한 후, 저평가된 명장 이·원 세 감독과 “엄마 없는 하늘 아래”1편(1977)과 속편(1978)걸작<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1981)등 9편을 이·쟈은호와<오·우동(1985),<이·쟈은호의 외인 구단>(1986),<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1987)등 4편을 작업했다. 특히 정·지영(<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이며, 1982>송·연수(<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갔고 1987>, 박·챠눅(<달은 충분하지 않나 해가 꾸는 꿈, 1992), 장·현수(< 걸어서 하늘까지 1992)>, 김·헌준(<장미 빛 인생, 1994>), 오·병철(<숲 속의 방, 1991>), 송·눙항(<No3,1997>)등의 데뷔작을 촬영했다. 그는 말한다.”『 영화 』과 『 영상 』을 구별해야 한다. “영상”는 iPhone에서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영화”는 생명이 있으므로 이것을 만드는 사람의 정신이 들어 있어야 한다10. 홍·교은표(Alex Hong, 1962~):”파라사이토 반 지하의 가족”과 “버닝”그 촬영 감독! 비슷한 연배의 유학파 김 효은그과 달리 도제식 시스템을 거쳐서 최고 수준까지 오른 대표적인 명장이다. 단적으로 한국, 아니 세계 영화사의 문제적 걸작으로 기록된 폰·주노 감독의 “파라사이토”(2019)와 이·장동 감독의 “버닝”(2018)가 그의 손으로 형상화했다. 전 30편의 필모그래피 가운데 그들이 김·효은그에 못지않다. 하지만 촬영 감독으로 출발 때는 기대를 갖지 못 했다. “애수의 하모니카”(김·스히, 1994)과 “부처를 닮은 남자”(김·진선, 1996)은 왜일까.한국 영화사의 단연 주목할 데뷔작”처녀들의 저녁”(임·상수, 1998)를 기점으로 상황은 급반전된다. 송강호(송·강호)의 재도약, 반칙왕(김·지 은, 2000)을 비롯한 각종 연합이 필요 없다”지구를 지켜라!”(장·쥬은화은, 2003),<태극기 휘날리며>(강·제규, 2004),<M>(이·묘은세, 2007),<어머니>(폰·주노, 2009),<스노 피아 서>(폰·주노, 2013),<해무(심·성보, 2014),<곡성(나·홍진, 2015)등 몇몇·걸작을 만들어 냈다. 김·효은그과 함께 이 20년간 한국 영화 촬영계를 지킨 쌍두 마차적 지주로 손색이 없다.정·장 일본 영화 평론가, 한국 문화 콘텐츠 비평 협회 회장 사진 제공 촬영 감독 협회, 인터뷰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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