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해 줘

지구를 사랑하는 작가가 쓴 여행 에세이의 제목이다. 정·세란 작가는 제가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이며 드물게 돈을 주고 산 여행 에세이이지만 나이가 지나면서 제목을 말하기는 마음이 무거워진다.사랑과 아끼는 동의어 아닌가. 지구인이 사랑해야 할 지구를 왜 아무도 아끼지 않는가. 계절이 침침하다. 벚꽃과 매화, 개나리, 산수유가 같은 주에 개화했다. 낮의 고온에서 벌써 반팔 옷에 몸을 통했다. 지하철에는 이미 물이 가동되고 있다. 나는 겨우내 끓인 찻주전자 안을 조금 높게 식기 선반에 놓였다. 주말 저녁에는 거리를 걸으며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4월 3일은 최고 기온 27도를 기록했다. 평년보다 10도 높았다. 그리고 다시 4월 6일, 봄비와 함께 기온은 한 자릿수로 급락했다. 어제는 잘 오르던 인왕산에 큰불이 일어났다. 인왕 산 마루 하나에 사는 D가 걱정에서 전화하면, 집 근처에 나온 화재는 소식도 없는데, 서울 화재는 소식이 빨리”라고 쓴소리를 했다. 까닭도 없이 궁금하다.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고 D는 황급히” 찌른다. 저격은 아니다”며 다시 말을 덧붙였다.벚꽃을 본 것으로서, 황록색 잎이 뾰족한 머리를 내밀었다. 꽃잎이 졌다는 뜻인데, 이상하다. 이렇게 빨리 벚꽃이 진 것? 잠시 도서관에서 공부했을 때는 밖에서 팔랑 팔랑 흩날리는 벚꽃이 밉고 중간 고사라는 비공식의 꽃말이 생긴 것 아닌가. 매미가 중간 시험의 상징이 될 것 아니냐는 등 밑에 소름이 돋는다. 지난해 강남을 덮친 폭우도 빈발한 화재도 땅이 가뭄으로 울고 있던 농민도 사람들이 뉴스에 둔화되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무섭다. 기후 변화는 처음부터 온다. 사회가 제도가 보장할 수 있는 가장 먼 곳에서 온다. 재해는 예측을 못하고, 아무도 보상할 수 없어서 재앙이다. 최근 기사를 쓰면서 만난 한 취재원은 “기후 변화는 서서히, 조금씩 일상을 부수고 가기 위해『 불편 』의 수준에 머무르게 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정신이 들면 예전 누렸던 모든 것을 잃게 된다”라고 말했다. 일상이 무너진다는 것이 가장 무서운 경고이다. 나는 콜린 효능성 알레르기가 있다. 몹시 춥거나 더울 경우 벌레에 쏘인 것처럼 둥근 두드러기가 나타난다. 요즘은 이런 일이 많다. 건강 악화가 원인일지도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내 몸도 지구의 기온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형형색색의 두드러기를 치며 나는 자신의 몸의 체온이 적절한 수준까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지구도 자신의 몸 어딘가를 치며 자신을 훼손하는 인류가 사라지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나.취재하러 다녀온 풍력 발전소기후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 ” 치우는 사람으로 흩뜨리다 사람이 따로 있다는 말이 따로”라는 결론에 귀결하기 쉽다. 감당 못하는 현기증을 맞자 그렇게 하기 싫어도 마음은 침착하기 때문이다.마찬가지로 기후 관련 기사를 보면 우울이라는 분이 계시다. 사실 쓰는 나도 우울하다. 기후 변화는 너무 커서, 제 영향력은 너무도 미미할 것이라는 게 포인트다. 가끔 기후 관련 전문가들의 견해는 가슴이 떨릴 정도로 단호한 사형 선고처럼 들린다. 그래서 기후 우울증이라는 용어도 생겨났다. 기후 우울증은 기후 위기에 대한 무력감, 트라우마 등에 의해서 생기는 우울감을 의미한다. 주로 기후 변화에 직면하는 청년층 관련 식자력의 높은 사람들에서 관찰된다. 실제로 WHO도 기후 변동을 “인류가 당면한 최대의 보건 위협”으로 제시했다. 발을 딛고 사는 세상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두려움 때문. 내 경우 우울감은 저와 인류에 대한 실망감과 증오, 안타까움과 무력함 등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마감이 끝나고 독일 출장의 전우들을 만났다. 합정 역에서 걷는 동안 조금은 누군가에게 기대했을 것의 페트병과 일회용 컵이 연석 위에서 뒹굴고 있었다. 보이는 것만 적당히 집어서 쓰레기 통에 넣었다. 한숨과 함께 다른 것이 입 밖에 쏟아지로 입을 다물고 걸었다. 미워하는 마음 없이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고 깨닫는 순간이다.선배들을 만난 뒤부터 조금 기분이 좋다. 화제는 여기저기 튀었지만 결론은 “잘 가고 있니?”라는 의문 부호였던 것 같다. 의문 부호를 던질 사람 사이에서는 마음이 좀 건강해진다. 우리는 술집 앞에 몰려들어”우리의 미래도 모르는데 지구에 대한 걱정을 더 많이 했어”과 박수까지 하면서 웃었다. 그 날 누구도 음식을 남기지 않았다. 한 선배는 자전거를 타고 집에 오면 저와 또 다른 선배는 함께 지하철로 걸었다. 우리가 오늘 사용한 탄소는 더 가치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한남동 비건식당 몽크스부처집에 돌아가면서 나눈 이야기를 생각했다. 선배는 ” 다름이 없어서도 날씨 얘기를 하며 SUV(스포츠용 다목적 차)를 운전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라고 한다. SUV의 탄소 배출량은 중공업, 해운, 항공보다 많다. 지난해 국내 승용차 판매 대수 중 SUV의 비율이 56%라고 한다. 역시 미워하는 마음을 줄이는 것은 쉽지 않다.그래도 관련 일을 하면서 가장 효과가 있는 해결책을 소개하면”아직(YET)”이라는 희망이다. 진부할지 모르지만 클래식은 영원하다는 공식은 여기에도 적용될 것 같다. 지구는 아직 멸망하지 않아 막는 시간도 존재한다. 아직 이 있는 시간이 얼마나 오랠지는 장담 못하지만, 모든 게 끝나지 않았다는 희망은 때에 무엇보다 가치가 있다. 지구인의 탓으로 하고 미워하고 싶은 마음을 지금은 모르는 척을 하고 싶다. 분명히 세상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목적이며 살아 분출하는 이산화 탄소를 줄이겠다는 의지는 세계 각지에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생존 때문에 탄소 중립을 고민하고 있다. 착하게 살고 싶어서 윤리적으로 그것이 올바른 선택이기 때문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라 지속성을 기대하게 된다. 텀블러를 무심결에 나오고 다시 집에 돌아가서 가질 정도의 정성, 배달 음식을 줄이는 불편함, 단속적으로 채식을 시도하는 도전과 호기심,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번거로움 등은 모두 대단한 변화다. 환경은 분류, 류난 등의 단어, 절대적인 윤리를 기대하는 엄한 잣대를 세우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우리끼리는 그렇지 마라. 격려와 응원이 필요하다. 어느 것 하나 완전하지 않으며 완벽하지 않아도 행동할 수 있도록. 80억의 지구인들이 드디어 지구의 도움이 되게.상기는 아트 인 사이트에서 볼 수 있습니다.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4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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